전색맹과 밤하늘의 별

"색맹의 섬"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재밌는 부분이 있어 발췌해봤습니다.

크누트는 그 나무 아래 서서 눈에 외알 망원경을 대고 바다와 그림자에 대조해가면서 달을 뚫어져라 관찰했다. 그러더니 외알 망원경을 내려놓고는 우리를 둘러싼 하늘을 응시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별이 수천 개씩 보여요! 은하수 전체가 보여요!"


크누트란 사람은 선천적으로 전색맹(complete achromatopsia)입니다. 흔히 반성유전이라 불리는 적록색맹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적록색맹은 원추세포 중에서 X염색체에 있는 유전자 이상이며, 생활에 큰 지장이 없지만, 전색맹은 원추세포가 없거나 있어도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네요. 정상적인 사람은 수정체 뒤쪽의 망막 부분이 오목하며 - 여기를 중심와(fovea)라고 하며, 중심와의 가운데를 황반(mascula leutea)이라 합니다. - 이 곳에 원추세포가 있어 색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색맹인 사람은 원추세포가 없어 - 중심와가 없다고 하는 것 같네요. - 선천적으로 색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합니다. 또한, 안진증을 동반하며, 강한 빛에 눈시림이 나타나고, 시력은 정상인의 1/10 정도의 약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크누트의 눈에 '수천 개의 별이 보일 수' 있었을까요?

별을 보는 사람이 어두운 대상을 찾아내는 방법에 '주변시'란 것이 있습니다. 본래 원추세포는 강한 빛에 흥분하며, 깜깜한 밤에는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간상세포는 약한 빛에 예민하며 깜깜한 밤에 도움된답니다. 그래서 상을 중심와 주변부에 맺게 되면 - 의도적으로 - 어두운 대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험 많은 아마추어 천문가는 주변시를 상당히 잘 활용합니다. 그래서 초보자보다 더 많은 별을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왜 갑작스럽게 주변시 얘기를 하냐고요? :)

선천적으로 전색맹인 사람은 원추세포가 없어서 평상시에도 간상세포를 이용해서 사물을 봅니다. 그래서 빛이 강한 낮에는 시력이 떨어지며, 대상의 세세한 부분을 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밤에는 간상세포의 활용도 면에서 월등한 전색맹인 사람이 훨씬 많은 별을 볼 수 있는 겁니다. 이들은 굳이 주변시로 별을 볼 필요없이 평상시처럼 별을 보면 될 테니까요.

과연 크누트가 바라보는 밤하늘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습니다.

by 꼬깔 | 2007/12/01 00:04 | SCIENTIA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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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황진 at 2007/12/01 00:34
그 옛날 하늘이 공해와 광해로 오염되기전의, 시골 밤하늘을 본것이 아닐까요?
전 그때 현기증 날 정도로 많은 별들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가고일 at 2007/12/01 00:43
주변시...는 약간 좀 다르지요.
아직 잘 쓴다고는 할수 없는데 눈 정가운데 초점에서 10도 정도 벗어난 곳에 있는 희미한 별들이 오히려 더 잘보입니다. 그래서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거기로 돌리면 다시 안보이게 되죠. 6등성 정도의 별은 주변시가 아니면 아예 보이지가 않더군요. 강원도 산골짝 하늘에서도 말이죠.
Commented by Arbino at 2007/12/01 01:25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는 시력'을 가진 저로서는 '크누트가 바라보는 밤하늘'이 어떤 것인지 알 도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시골의 친척집에 가거나 학교의 행사 등으로 외진 곳에 묵었을 때, 그런 곳의 밤하늘은 유달리 맑고 별이 잘 보였던 기억은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역시 누구에게나 단점은 있지만 그것을 보완해줄만한 장점 또한 가지고 있는 법이로군요. 이런 것을 가리켜서 '아우프헤벤'이자 '마이너리티의 카리스마'라고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Arbino-
Commented by killroo at 2007/12/01 02:06
주변시는 군대가서 야간사격시 조교들이 굴려가면서 친절하게 알려주지요.
Commented by 꼬깔 at 2007/12/01 11:25
황진님// 이 책에서는 미크로네시아의 섬에서 본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 당연히 최적의 밤하늘에서 바라본 모습이겠지요. :)
Commented by 꼬깔 at 2007/12/01 11:27
가고일님// 말씀처럼 주변시를 잘 활용하면 희미한 별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점점 많은 별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ㅠ.ㅠ
Commented by 꼬깔 at 2007/12/01 11:28
Arbino님// 우리의 감각기관 어딘가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보상하기 위해 다른 감각이 발달한다고 하더군요. 전색맹인 사람은 색깔을 느낄 수 없지만 일반인이 느끼지 못하는 섬세한 명암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하네요.
Commented by 꼬깔 at 2007/12/01 11:28
killroo님// 아하하 :) 그러고보니 야간사격이 있었군요. :) 조교들은 참 친절해요~ :) 좀 굴려서 그렇지~ :)
Commented by 트로오돈 at 2007/12/01 16:45
저는 집 뒷골목이 다른 곳보다 불빛의 양이 적어서 그렇게 많이는 아니지만 다른 곳보다는 많은 별을 식별할수 있는 정도입니다.문제는 집 뒤로 갈 일이 전혀 없다는 것;;
Commented by 꼬깔 at 2007/12/01 18:14
트로오돈님// 그렇군요. :) 확실히 불빛이 적은 곳에서는 보다 많은 별을 볼 수 있지요. :)
Commented by Mizar at 2007/12/01 20:55
제가 트랙백 보낸 글의 결론은 본문 중에 크누트가 "별이 수천 개씩 보여요! 은하수 전체가 보여요!"라는 이야기를 한다는게 개인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는가? 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은하수를 보신분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은하수는 처음보는 사람들은 십중팔구는 은하수 인 것을 모릅니다. 그냥 구름이 꼈다라고 생각하지요.

개인적으로는 크누트가 전색맹이라면 아마 수천 개의 별이 보인다는 표현대신에 '하늘이 온통 뿌옇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시오、 at 2007/12/01 22:53
전색맹인 사람은 섬세한 명암으로 사물을 본다고 하신 말을 생각하며 본문을 다시 읽으니 크누트가 본 광경이 더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정말 아름다울 것 같아요.
Commented by 꼬깔 at 2007/12/02 00:52
시오님// 저도 그럴 것 같습니다. :) 주말 잘 보내세요.
Commented by 꼬깔 at 2007/12/02 00:53
미자르님// 그럴 수 있겠군요. :) 어차피 들은 얘기를 색스가 적은 것이고, 이를 번역하셨을테니까요. 번역과정의 오류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크누트가 그런 소릴 했거나, 색스가 옮겨적는 과정에서 그렇게 표현했거나란 것이겠네요. :)

그런데, 다시 책을 읽어보니 단지 은하수처럼 뿌옇게 본 것인지 의아한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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