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정답의 추억

이번의 복수 정답 파동을 보니, 4년 전에 겪었던 비슷한 일이 생각납니다.

2003년 4월이었습니다. D모 여고의 1학년 중간고사 물리 문제였습니다. 한 학생이 아무래도 정답이 이상하다면서 질문하더군요. 그런데 문제가 낯이 익더라고요. 그리고 기억이 났습니다. J사의 H 시리즈 물리Ⅰ 문제집에 나온 문제였던 겁니다. 고1 물리 문제를 고2 문제집에서 그대로 출제했던 거죠. 그런데 이 문제집의 정답이 잘못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학교에서도 똑같이 잘못된 정답을 발표했더군요. 

같은 높이에서 떨어진 접시가 콘크리트 바닥에서는 깨지는데 솜 위에서는 안 깨지는 현상과 같은 원리로 설명이 가능한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보기
ㄱ. 축구 경기에서 골키퍼가 공을 받을 때 배를 뒤로 빼면서 받는다.
ㄴ. 야구공을 받을 때 글러브를 낀 손으로 그냥 받으면 손을 뒤로 뺄 때보다 손이 더 아프다.
ㄷ. 대포의 포신이 길수록 포탄이 더 멀리 날아간다.
ㄹ. 쿠션이 좋은 침대에 누으면 딱딱한 침대보다 아늑하다.
 
문제집에 나온 정답은 ㄱ, ㄴ, ㄷ이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ㄱ, ㄴ만 답이 될 것 같은데 문제집 정답이 ㄷ을 포함하더군요. 문제 조건이 충격량은 같은 상태에서 충격력의 감소, 작용시간의 증가 형태인 것 같은데, ㄷ은 충격력은 일정하고 작용시간이 길어져 충격량이 변한 것이므로 정답이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렇게 설명해주고 아무래도 정답이 잘못된 것 같고,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정정해주실 것이라 말했지요. 사실 저도 긴가민가해서 아는 분께 제 생각을 얘기하고 확인을 했습니다. 그분께서 이 포스트를 읽으신다면 기억하실 겁니다. :)

그런데 몇몇 아이들이 학교 선생님께 이의신청했지만, 선생님들께서는 입을 맞추었는지 똑같은 논리로 ㄱ, ㄴ, ㄷ이 정답이라고 말씀하셨다더군요. 그래서 우선 J사 홈페이지에 '오답 수정'을 요청한 후에 이를 근거로 접근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한 아이가 J사 홈페이지에 오답 여부를 물었는데, 학교 선생님과 똑같은 얘기를 하더랍니다. 그래서 제가 J사에 문의했습니다. 물론, 학생이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얘길 했지요. 그랬더니 "저자와 상의한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답변을 주더군요. 그리고 "상의 결과 오답인 것 같다."란 답변이 왔고, 정답을 수정하겠다고 하더군요.

이를 바탕으로 D여고에 메일로 문의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답변도 없더군요. 오답으로 말미암아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교육청에 민원을 넣어볼까 생각했는데, 결국 학교 선생님께서 '복수 정답'으로 정정했다고 하더군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ㄱ, ㄴ도 정답으로 처리한다."

라고 했다더군요. 사실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ㄷ이 포함된 것도 정답으로 인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미 성적이 다 나온 상태였고, 때마침 바쁜 일이 있어 끝까지 마무리 짓지는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상황이 2008년 물리Ⅱ 11번과 비슷한 것 같네요. 아무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by 꼬깔 | 2007/12/24 21:03 | SCIENTIA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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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object at 2007/12/24 22:23
ㄹ은 무슨 현상이죠? 긁적..
Commented by 제갈교 at 2007/12/24 23:23
그러고보니 교는 고1 때 국사 문제 하나 가지고 의문을 품어서 국사 샘을 찾아갔었다는...
Commented by 후유소요 at 2007/12/24 23:47
ㄹ은 질량을 제외한 충격량이 추가로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 (문과의 어설픈 추측;;)
Commented by st_vast™ at 2007/12/25 00:53
물리 문제가 무슨 IQ검사 문항 같네요..
Commented by 불멸의 사학도 at 2007/12/25 02:09
국사문제는 연대나 인명의 오류가 아닌 이상 뭐라고 트집잡기가 어렵죠... 워낙 의견이 분분한데다 맨날 뒤집히는 곳이니까 말이죠... 그런 시험이라면 이해가 가겠는데 물리에서 답이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는건 출제자의 비겁한 변명인 것 같네요...
Commented by 꼬깔 at 2007/12/25 03:07
object님// ㄹ은 접촉 면적의 차이에 의한 압력 차이라 생각됩니다.
Commented by 꼬깔 at 2007/12/25 03:07
제갈교님// 그러셨군요. :) 해결하셨고요?
Commented by 꼬깔 at 2007/12/25 03:08
후유소요님// 면적과 관련된 것 같습니다. :)
Commented by 꼬깔 at 2007/12/25 03:08
st_vast™님// 아하하 그런가요? :)
Commented by 꼬깔 at 2007/12/25 03:09
불멸의 사학도님//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 크리스마스 잘 보내시고요. :)
Commented by NoSyu at 2007/12/25 08:37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라...
문득 드는 생각은
'문제 어렵게 혹은 창의적으로 만든다는 생각에 더 혼란만 주는 것 아닐까??'였습니다.OTL....;;
Commented by ileshy at 2007/12/25 11:37
그냥 생각이지만, ㄷ 보다는 ㄹ 문항이 더 논란거리 같은데요.. 물론 아늑하다는 말의 과학적 정의를 내린다는것에서 부터 문제가 되겠지만, 따지고 보면 아프다는것도 주관적인것이고 (물론 압력의 차이를 느낀다는 점에서 다른 문항에 비하면 객관적입니다만.), ㄱ.문항은 사실만 있지 현상은 나타나 있지 않죠. 뭐 강슛의 충격을 완화하기위해 배를 뒤로 뺀다던가하는 말이 없군요.. 그다지 문항이 과학적이지 않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PS. 따지자는 것은 아닙니다만, 제 생각에 실제 축구경기에서는 상대방과 우리편에게 확실히 잡았다는 표시를 하기 위해서 라던가. 공을 잡은 이후에도 대강 잡고 있으면 빼앗길 수 있으니 그런 과장된 모션을 하는걸로 아는데요. 대부분의 경우 공을 받고 움츠리던데요..:)
Commented by 꼬깔 at 2007/12/26 11:36
NoSyu님// 그러게요... ㅠ.ㅠ
Commented by 꼬깔 at 2007/12/26 11:38
ileshy님// 말씀처럼 보다 객관적으로 출제한다면 그런 것들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실제 저런 유형의 문제는 수능에 출제된 적이 없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쨌든 전 충격력이란 관점에서 저 문제를 풀었던 것이고요. :)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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