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27일
故 김득구 선수에 대한 단상
김득구가 남기고 간 슬픈 이야기
1982년 11월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무명 - 적어도 제게는 - 인 김득구 선수가 당시 최강이라 불리던 미국의 레이 '붐붐' 맨시니와 세계 타이틀 매치를 벌이던 날이었지요. 강타자였던 맨시니와 맞붙은 김득구 선수는 예상과 달리 적극적인 인파이팅으로 오히려 많은 유효타를 날렸고, 맨시니를 당황하게 하였습니다. 적어도 10라운드 정도까지는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신력으로 버텼지만 김득구 선수 역시 많은 펀치를 허용했고, 맨시니의 강한 주먹에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14라운드... 맨시니의 강주먹이 김득구 선수의 안면에 작렬했고, 김득구 선수는 크게 넘어졌습니다. 이후 김득구 선수는 로프를 잡으며 일어서려고 했지만 결국... 아래 사진이 김득구 선수가 쓰러진 후 일어서려고 하는 모습입니다. 저 상황은 이미 뇌출혈이 있던 상황이며, 실질적으로 의식이 없던 상황입니다. 말 그대로 본능적으로 일어서려는 모습이지요. ㅠ.ㅠ
당시 TV 중계는 생중계라고 했지만, 사실 2시간 정도 늦은 중계였습니다. 제가 14라운드를 지켜볼 때 이미 김득구 선수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지요. 결국, 의식을 잃고 수술을 받았지만 '뇌사 판정'을 받았고, 이후 우리나라에서 한의사까지 보내 살려내려 했지만 결국... 당시 의연하신 노모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김득구 선수의 시신은 김포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때 저도 심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더욱 슬픈 것은 이후 김득구 선수의 어머니께서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음독자살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기억으로 말미암아 유오성 주연의 '챔피언'이란 영화를 봤던 기억도 납니다.
왼손잡이(제가 기억하는 한)에 표범 무늬의 트렁크를 입었던 강인한 파이터 김득구 선수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은 김득구 선수의 죽음뿐 아니라 그 어머니의 죽음이란 슬픈 결말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제 가슴 속에 가장 강렬한 파이터로 남은 선수는 바로 김득구 선수입니다.
모쪼록, 최요삼 선수가 쾌차하기만을 바랍니다. 힘내세요.
# by | 2007/12/27 15:15 | 날적이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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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내일의 죠 에서도 주인공의 라이벌 리키이시가 김득구씨와 똑같은 식으로 사망합니다.
아마 김득구 씨가 모델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안타까운 죽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물론 태어나지도 않았지만요..
김광선-장정구-문성길-유명우 선수가 활약하던 전성기가 지나고 시나브로 몰락해버린 복싱, 참 아쉽습니다...
다만 김득구 선수 사고 때 저는 계를 직접 볼 여건이 아니라 나듕에 뉴스로만 접해서리
느낌이 덜했습네다. 경기를 직접 보지 못해서 말이디요.
그리고 위에 댓글을 보니 리키이시라는 만화 인물이 나오는데, 기거이 누구디?
일본 만화의 인물(일본인)은 한국식으로 바꿔 버리기 때문에 몰갔구만요.
저도 <도전자 허리케인> 버전으로 봤는데, 지금도 그 이름덜이래 거의 기억하디요.
주인공 백만리, 친구이자 라이벌 최도천, 공포의 크로스카운터 일인자 파이팅 준치,
근데 주인공의 주먹에 맞아 죽은 인물이 있었나? 기억이 가물가물...
아마도 리키이시래 친구 최도천으로 보이누만요.
심한 감량을 했다는 점도 기렇고 말이디요.
본래 페더급인데 밴텀급인 주인공과 붙으려고 감량을...
참고로 이 밴텀급은 나듕에(1974년) 홍수환 신화를 낳은 체급이 되었다는 인연도!
한국 연재를 위해 그 만화를 베껴 그린 사람이 이두호 화백(현재 교수)이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