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과학은 도태되는가?

지구과학(Earth Science, Geoscience)은 지구과 관련한 여러 가지 과학을 이르는 말입니다. 본래 천문학은 지구과학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지만, 희한하게 우리나라는 지구과학이란 이름으로 천문학까지를 묶어 버렸지요. 전 지질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 학문에 강한 애착이 있지요. 물론, 고생물학에 가장 큰 애착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지구과학은 단지 과학의 별책부록인 듯합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예전처럼 모든 과학을 학교에서 배울 때는 좀 나았지만, 과학을 선택하는 사회가 된 지금은 지구과학이란 그저그런 과목일 뿐입니다. 그런데 가끔씩 화가 나는 것은 학교 선생님이나 학원 강사들이 '지구과학을 왜 선택하니?', '그런 것을 왜 해?'라고 아이들에게 얘기할 때입니다. 국어 선생님, 수학 선생님, 영어 선생님, 심지어 다른 과학 선생님까지 그런 말씀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제가 고3 때 지원하고자 하는 학과를 택할 때 주변 사람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지구과학은 그저 좀 외우면 되는 그런 과목. 공부를 그다지 잘 하지 않은 아이들이 물리를 대신해서 선택하는 과목이란 인식이 팽배하다는 것에 자괴감이 느껴지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과연 그들이 지구과학에 대해 아는가?'란 반문을 하고 싶어집니다. 어떤 것에 대해 알지 못하는 자가 '쉽게 판단'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전 지구과학에 애착이 있고,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정확하게 가르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점차 자연선택에 의해 - 어찌보면 입시 제도에 의한 인위선택이 되는 듯합니다. - 도태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ㅠ.ㅠ 수능 과목이 축소된다면 역시 0순위는 지구과학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관련 학과는 모르겠지만요. 그러나 과연 처음부터 지구과학 계통의 학과를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을까란 생각해 보면 우울해집니다. ㅠ.ㅠ

2년 전 지질 자원 연구원에 있는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이젠 후배가 들어올 것 같지 않아. 선배를 열심히 챙겼지만, 날 챙겨줄 후배는 없겠네."

참 씁쓸한 말입니다. ㅠ.ㅠ 이공계의 현실이 암울한 것도 우울하지만 이공계 내에서의 편차는 더욱 큰 것이 현실인 듯합니다. 그리고 이런 쏠림은 이미 고등학교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학 수능 과목을 축소하는 것만이 능사일까요?

by 꼬깔 | 2008/01/26 14:48 | SCIENTIA | 트랙백 | 덧글(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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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제갈교 at 2008/01/26 14:56
교는 고3 때 지구과학 쪽도 좋아하긴 했지만 (하지만 고2 때 지구과학1만...) 고3 때 수업 선택은 '물리1,2,화학1,2'로 해버리고, 수능은 '물리1, 화학1,2, 생물1'으로 봤습니다. (사실 화학 쪽에 더 관심이...ㅎㅎ)

그나저나 고3 같은 반에서 수능으로 지학을 준비하던 애들도 꽤 있던데 1이던가 2던가...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8/01/26 15:01
요즘은 지구과학도 진화생물학과 함께 가는 것 같습니다. 수학처럼 대통일 생물학이라던가(...).
Commented by 마이니오 at 2008/01/26 15:11
으헝헝 암울한말..

지구과학 팔려고 고딩때 지구과학 2 가려고햇으나
사람이없어서 못가서 안습 OTL 우리나라사람들은 참 내신에나 돈에 이득안되면 관심없는거같아요
Commented by 어부 at 2008/01/26 15:37
화학도 별 관심 없기는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Commented by Lee at 2008/01/26 16:45
돈 안되면 무관심해지는거..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겠지만 한국은 더한 거 같군요. 공학도의 입장에서 기초과학의 어느 분야건 간에 제대로 뒷받침이 되어 주지 않으면 원활한 연구가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더 유감스럽습니다. 특히 지질학이나 고생물학의 경우 제 전공인 재료공학을 적용할 여지가 꽤 많은 매력적인 분야라서 더 아쉬울 따름입니다.
Commented by BigTrain at 2008/01/26 17:17
그런데 지질학이나 해저음파측량학같은(이건 지구과학이라고 놓기엔 좀 그런가요?) 경우는 해외에서 대표적으로 유용하게 쓰이는 학문이라는 게 더 아이러니컬합니다. 유전을 탐사하고 해저 및 해수 특성 지도를(이게 국방-특히 해군- 분야에서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만드는 이들이 바로 저 분들인데요.

또 대서양 중앙해령이 어떻게 탐사되고 판 구조론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정책 결정가들은 아려나요.

제가 오늘 블로그에 약간 흥분해서 끄적이기도 했었지만 인문학에 이어 과학까지 암기과목화되고 선호도가 뚜렷히 갈리는 건 참 아쉬운 모습이네요. -_-; 사실 과학은 절대 암기과목이 아닌데..(저도 그렇게 공부했긴 했지만..)

PS. 특히나 20세기부터 자리잡은 거대과학의 역사를 바라보면 이제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을 가르는 게 부질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핵무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판 구조론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말이지요.
Commented by object at 2008/01/26 18:15
천문학은 사실 물리학인데 말이죠. 실제로 서울대 같은 경우는 천문학과가 물리학과랑 통합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수능 과목 축소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갸우뚱하답니다. 단순히 "난 이과였지만 정치경제, 국사, 한국지리까지 다 했어!"라는 꼰대성 발언이 아니라 고교 시절이 아니고선 언제 고생대, 중생대라는 말을 들어볼까요. 그래서 힘들더라도 고교시절에는 많은 과목을 가르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1/26 18:41
고등학교에서 문과 이과 구분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고, 굳이 과학을 물리 화학 생물 지학 이렇게 나눌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국어 영어 수학처럼 두리뭉실하게 엮어서 과학 1 2 3 식으로 두고 물리 화학 생물 지학 등은 각 단계의 chapter로 놓고 다 가르쳐도 되지 않을까요. 실제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세분화 된 전공들 사이의 벽을 넘어 활발히 교류하는 시대에 고등학교 수준에서 과학을 세분화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Ludens at 2008/01/26 20:28
저는 고등학교에서 물화생과 물화지에서 무얼 선택해야하나 고민했습니다.
결국 지구과학을 선택했고 2학년때엔 열심히 배웠고 공부도 열심히했죠ㅎ
하지만 고3이 되는순간 지구과학을 놔버렸습니다. 이유는 논술때문이었죠
지구과학대신 생물을 공부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되버렸습니다.
실제로 논술문제들을 보면 생물이 대부분 나오고 지구과학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안나오다시피 합니다.
후...이것이 저만의 문제는 아닐것이라고 봅니다ㅠ 어떻게 보면 대학에서 지구과학을 무시하는것 같습니다-_-
이런 상황에서 고등학생들은 지구과학을 하지 않죠;; 저처럼 하고싶어도 말입니다...ㅠ
Commented by 불멸의 사학도 at 2008/01/26 20:54
음... 역사학과만 해도 유학파 교수님들이라면 너무 좁은 분야만 판다고 사회과학과의 연계를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데... 정부 교육 당국자들 중에는 유학파가 없나보네요... 다 행정고시 출신 뿐이라 그런 걸까요?

뼛속 깊이 문과체질인 저도 수학과목은 거의 듣는 즉시 머리에서 소거되어버렸지만, 과학시간에 배운 것들은 아직도 머릿속에 많이 남아있고, 유용하게 쓰이기도 하는데 말이죠... 너무 실용적인 것만 따지다 보니 상식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꼬깔 at 2008/01/26 21:02
제갈교님// 요즘은 점점 줄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과목이 축소된다면 또 0순위일 것 같고요. ㅠ.ㅠ
Commented by 꼬깔 at 2008/01/26 21:03
제절초님// 대통일 생물학... 재밌네요. :)
Commented by 꼬깔 at 2008/01/26 21:03
마이니오님// 학교에서 폐강하는 경우도 허다한 것 같더라고요. ㅠ.ㅠ
Commented by 꼬깔 at 2008/01/26 21:04
어부님// 고교과정에서 화학은 가장 많은 학생이 선택하는 과목입니다. 지난 수능도 화학1이 제일 많이 선택했고, Ⅱ과목에서는 생물 다음으로 많이 선택한 과목입니다.
Commented by 꼬깔 at 2008/01/26 21:08
Lee님// ㅠ.ㅠ 우리나라에서 기초과학으로 먹고 사는 것은...
Commented by 꼬깔 at 2008/01/26 21:09
BigTrain님// 저도 봤습니다. 한숨 밖에 나오지 않더라고요. ㅠ.ㅠ 에휴...
Commented by 꼬깔 at 2008/01/26 21:10
object님// 그러게요. 어느 순간부터 영역을 선택하게 하고 고교 과정에서 그래도 기본적으로 배워두면 좋을 것을 배우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국사가 선택 과목이 되는 세상이니까요...
Commented by 꼬깔 at 2008/01/26 21:11
누렁별님// 에휴... 그러게요. 사실상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 참 작위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도 한 과목으로 묶어서 chapter를 달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ㅠ.ㅠ 중학교 과학처럼 말입니다.
Commented by 꼬깔 at 2008/01/26 21:12
Ludens님// 말씀처럼 지학Ⅰ을 선택하지 못하고 물리Ⅰ을 선택한 학생의 고민이 거기에 있더군요. 대학에서 무시한다기보다는 지구과학 관련학과가 적기 때문입니다. ㅠ.ㅠ
Commented by 꼬깔 at 2008/01/26 21:13
불멸의 사학도님// 사실 고등학교 때 배운 지식이 거의 평생을 간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고등학교 때 폭넓게 배우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점점 더 줄이고 있습니다. ㅠ.ㅠ
Commented by 어부 at 2008/01/26 21:34
참, 그거 신기하군요. 저희 때는 사실 화학 '외울 거 많다'고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말입니다.
Commented by 解明 at 2008/01/26 23:11
저는 과학을 배울 때 지구과학이 가장 재미있다고 느꼈는데 다른 사람은 아닌가봐요. 그나저나 입시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수능의 과목을 축소하겠다는 발상은 정말이지 교육에 생각이 있는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고 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교양을 쌓기 위해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요?
Commented by snowall at 2008/01/27 00:03
저는 물리 선택입니다만, 그래도 저 고등학교때는 물리보다는 쉽다고 꽤 선택했었는데...-_-; 이젠 그마저도 입지가 좁아지나보네요.
두고 봐야죠. 기초과학 경시하고서도 나라 꼴이 잘 되는 모습을 보면 참 뿌듯할 것 같습니다. -_-;
Commented by 꼬깔 at 2008/01/27 11:59
解明님// 말씀처럼 입시부담이란 명분으로 과목 축소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반대입니다. ㅠ.ㅠ 문제는 수능에 포함되지 않는 과목이면 평상시 교육의 집중도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ㅠ.ㅠ
Commented by 꼬깔 at 2008/01/27 12:00
snowall님// ㅠ.ㅠ 말씀처럼 물리보다 쉽다고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정말 말로만 기초과학, 기초과학을 외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ㅠ.ㅠ
Commented by ileshy at 2008/01/27 22:11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죠.. 교과 통합도 생각해 볼 문제이지만, 과학으로, 그것을 받아 들여줄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있을런지.. 선생님들의 역량도 문제가 될것이고요. 선생님들의 편의대로 가르쳐 왔던것도 문제가 될 수 있겠죠. 선생님 탓만 하는것은 아닙니다만.. 어쨌건 배울건 배워야 되는데요.. 20년 뒤에 손해봤다는 생각이 안들려면 말이죠.
Commented by 꼬깔 at 2008/01/28 00:02
ileshy님// 저도 과목 축소가 된다면 기본적으로는 과목 통합 쪽이었으면 하는데, 단순한 과목 축소가 되겠지요. ㅠ.ㅠ 전 기본적으로 배울 수 있을 때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Frey at 2008/01/28 08:30
뭐... 지자연에 계시는 선배들 모시고 지난 주말에 MT 다녀오긴 했습니다만, 저희는 아직 지자연에라도 직업을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 orz
Commented by 꼬깔 at 2008/01/28 14:43
Frey님// ㅠ.ㅠ 에휴...
Commented by 꼬깔 at 2008/01/29 13:26
어부님// 제가 과학 선택할 때는 3가지 정도의 조합이 있었습니다.
물리+화학, 물리 + 지학, 생물 + 화학
전 물리 + 지학의 조합을 택했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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