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4일
공룡은 왜 방주에 타지 못했을까?
노아는 홍수가 시작되기 전 모든 동물에게 개별적으로 합격 통지서 방주에 탈 날짜을 통보했습니다. 그리고 홍수 전 날부터 승선을 허가했습니다. 하룻동안 승선이 이뤄졌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고른 공룡은 건망증이 심했고 깜빡했던 겁니다. 결국 공룡은 방주에 타지 못했고 "아놔 님! 난 아직 타지 못했단 말이야"를 외치며 멸종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슬픈 얘기...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 공룡 멸종과 노아 방주의 진실 (2) by 꼬깔
- 공룡 멸종과 노아 방주의 진실 by 꼬깔
- 예서가 그린 노아 방주 by Mayflower
- 스프리건을 보다 by 이젤론
- 창작밸리로 보낸 이유는 by 꼬깔
# by | 2009/11/04 05:52 | 공룡 牛's개 | 트랙백 | 덧글(3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익룡도 못 타고, 수룡(?)도 못 타고 ㄲㄲㄲ... 시조새도 못 탔고...흠...또...검치호랭이도 못 타고...-_-; 근데 저 노아의 방주에 바퀴벌레도, 아메바도 다 탔던 걸깡-_-ㅋㅋㅋㅋ
대부분의 모든 종교에서 신화는 어떠한 비유의 대상입니다.
예를들면 불교에서는 귀자모신의 전설이 있습니다.
남의 자식을 잡아 자신의 자식에게 먹이는 야차녀가, 자신의 자식을 부처가 감춰버리자 슬피 울다가 부처의설교를 듣고는 대오각성하여 아이를 지키는 귀자모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실제로 그러한 일이 있었다"라고 이해하여 "고대 라자기르의 아동인구는 이로인해 감소했다"고 이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남에게 고통을 주는 자에게 주는 교훈]이나, [선을 행하기 위해 악을 행치 말라]는 교훈적 이야기로 받아들여야겠지요.
이 말은 [불교는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될수 있으니, 죽기 직전에 깨달음을 얻으면 되겠네요~]라는 수준의 말밖에 안됩니다.
기독교의 회개나 불교의 깨달음이나, 자기가 하고자 하는 그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의 예를 들자면,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려 합니다.
흔한 말로 "내가 하면 차선변경상 불가피, 남이 하면 끼어들기"가 있겠지요.
그러한 상황에서, 남과 나를 동일시하고 자신의 행동을 진실로 객관적으로 보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한 것이 가능한 사람이 바로 기독교에서는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사람"이요,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은자"라고 하겠지요....
그러한 것이 "나는 죄인이니 회개하고, 혹은 공즉시색이요 색즉시공이라~"라는 기독교 이론과 불교의 이론을 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명 '대오각성'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무협지의 비교를 하자면, "검은 무한히 자유롭게 뻗어나가야 화경의 경지에 이를수 있고 현경에 도달할수 있다"는 말은 대부분의 무사들이 다 알고 있는 사항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진실로 깨달은 사람, 진실로 실천할수 있는 사람이 화경에 들고 현경에 도달할수 있는 것이지, "이제부터 난 검을 자유롭게 쓰겠어~"하고 백날 말해봤자 성취를 얻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
그 비유를 비유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말 자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타인/타종교인에게 사실이라고 강요(?)하는 경우들 때문에 많은 반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스위스 옆의 리히텐슈타인 국경지대에 사는 신학자 'ssaeng kura'씨의 이론에 따르면
공룡이 노아의 방주에 타지 못한 이유는 노아가 새들에게 조상인 공룡들을 책임지라고 명령했지만
불효자인 새들은 그냥 공룡들을 무시했고 그래서 공룡이 멸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실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경주의 목표로 삼았던 뒷산의 나무는 사실은 노아의 방주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