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은 양안시를 지녔을까?


일찌감치 준비했던 글인데, 인제야 정리해 올리게 됩니다. 작년 2월 방명록에 이런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사실 질문이라기보다 의견을 묻는 글입니다.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겨서 질문들이러 왔습니다.
현생 육식동물들은 거의가 하나같이 눈이 앞으로 모여있어서 양쪽 눈에 의해 나타나는 중복된 시야각으로 입체적으로 사물을 판단하여 정확한 공격(?)을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뭐냐하면 티란노사우르스같은 육식공룡의 경우에는 화석 머리뼈를 살펴보거나 복원해 놓은 모습을 보거나... 눈이 너무 양 옆에 있어서 시야각의 중복이 거의 있을 수 없습니다. (가끔 정확한 공격을 가한다는 서적이나 다큐의 내용을 볼 수 있는데...) 눈이 이렇게 달려있어서야 어떻게 정확한 공격을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안 들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초식공룡의 화석과 비교했을 때도 눈의 위치는 작은 차이밖에 없어 보입니다.

이에 대해서 꼬깔님의 의견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o^

그리고 오늘 - 정확히 다현맘 생일입니다. :) - 역시 비슷한 질문이 비공개 댓글로 달렸습니다. 요점은 뇌입원 동물 싸움 카페에 "티렉스는 쌍안시(양안시)를 가질 수 없다."라는 논지의 글 - http://cafe.naver.com/ehdanf21/26324 - 이었고, 이 글에 대한 의견을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카페 회원 가입을 해야만 볼 수 있는 글인지라 결국 가입까지 하고 봤습니다. ㅠ.ㅠ

2006년 Stevens가 쓴 공룡, 특히, 수각류(theropods)의 양안시(Binocular vision)와 관련한 논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논문이 바로 두 분께서 원하시는 답변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 논문에 대한 요점만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기본적인 용어를 먼저 확인해보겠습니다.

ⓐ AD (optic axis divergence)
☞ 각 눈의 광축 (optic axis) 이 이루는 각도를 말하며, AD가 180˚가 되면 각 눈은 완전히 측면을 향하게 되며, 0˚가 되면 이론적으로 완전히 정면을 향합니다. 사람은 약 30˚ 정도로 모든 동물 중 가장 작은 값을 보입니다. 우리 눈의 광축은 정면으로부터 약 15˚ 방향을 향합니다. 한쪽 눈을 감고 시야를 확인해보세요.

ⓑ BFoV (Binocular Field of View)
☞ 두 눈의 시야가 겹쳐지는 영역. 이 영역이 커야 입체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약 110˚로 최댓값을 지닙니다.

ⓒ MFoV (Monocular Field of View)
☞ 한 눈의 시야. 사람은 약 150˚ 정도입니다.

ⓓ TFoV (Total Field of View)
☞ 두 눈으로 본 전체 시야. 사람은 약 180˚ 정도입니다.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거리감을 느끼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BFoV가 넓은 동물은 입체감을 느낄 수 있고, 거리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2) BFoV가 지나치게 좁은 경우 (20˚ 미만) 고개를 까닥이는 동작으로 거리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1) 은 Homo sapiens를 비롯해 눈이 정면을 향한 동물들이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2) 는 닭처럼 눈이 측면을 향한 동물이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닭이 고개를 까닥이면서 돌아다니는 것은 이런 거리감을 느끼려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공룡, 특히, 포식자인 수각류는 어땠을까요? Stevens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얘기하자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수각류 대부분이 양안시를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양안시를 지니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합니다.

1) BFoV 충분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20˚ 이상)
2) 양안시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없거나 최소화되어야 한다. (사람은 코, 티렉스를 비롯한 공룡은 주둥이)

일반적으로 파충류는 146-172˚ AD, 144-160˚ MFoV, 10-20˚ BFoV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즉, 일반적으로 파충류는 양안시를 지닌다고 보기 어려운 셈입니다. 물론 모든 파충류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뱀 중 녹색 채찍뱀 (Ahaetulla prasina) 은 무려 45˚의 BFoV를 지닙니다. 또한, 악어는 일반적으로 25˚ 정도의 BFoV를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공룡은 어떨까요? Stevens는 총 7종의 공룡 - Allosaurus, Carcharodontosaurus, Daspletosaurus, Nanotyrannus, Tyrannosaurus, Velociraptor, Troodon - 의 두개골을 복원해 AD와 BFoV를 측정했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결과입니다. 그래프에서 y축은 정면을 응시하면서 고개를 숙인 각도를 뜻합니다. 즉, +10˚는 정면을 응시한 채 고개를 약 10˚ 수그린 것을 뜻하는 겁니다.
사람은 고개를 숙이지 않은 상태에서 최대 BFoV를 나타내며, 그 값은 110˚ 정도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일수록 BFoV는 좁아집니다. 그리고 알로사우루스는 거의 일정한 BFoV를 나타내며, 약 20˚ 정도입니다. 또한, 카르카로돈토사우루스는 고개를 숙이지 않은 상태에서는 BFoV가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두개골의 장식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론적으로 40˚ 가까이 고개를 수그려야 30˚ 안팎의 BFoV가 나타납니다.
Allosaurus
Carcharodontosaurus

결과적으로 알로사우루스와 카르카로돈토사우루스는 두개골의 누골이 오히려 시야를 방해하는 셈입니다.
Daspletosaurus
Nanotyrannus
Tyrannosaurus

티라노사우리드의 결과는 알로사우로이드와 사뭇 다른 양상입니다. 측정한 세 공룡은 약 35 - 55˚ 범위 BFoV를 나타내며, 티렉스는 고개를 약 10˚ 수그리면 최대 55˚의 BFoV를 나타냅니다. 즉, 이들은 충분한 양안시를 지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벨로키랍토르 역시 티렉스처럼 10˚ 정도 고개를 숙이면 약 55˚ BFoV를 보이며, 트로오돈은 20˚가량 숙이면 무려 60˚의 BFoV를 나타냅니다. 이는 현생 맹금류의 BFoV가 50˚ 안팎이란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값입니다.
Velociraptor

Troodon

일반적으로 BFoV가 10˚ - 20˚ BFoV면 매복, 45˚ 이상이면 먹잇감을 추격하는 방식의 사냥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즉, 좁은 BFoV는 기회를 엿보며 순식간에 덮치는 - 악어나 코모도 드래곤과 같은 스타일 - 방식이며, BFoV가 크면 먹잇감을 추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고려할 때, 최소한 티라노사우리드와 마니랍토란 (드로마이오사우리드, 트로오돈티드) 은 먹잇감을 추격하는 스타일의 사냥을 했을 가능성이 크며, 알로사우로이드는 매복에 의한 사냥 - 또는 집단 사냥 - 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부 학자는 알로사우루스가 먹잇감을 급습해 머리고 받고 앞다리와 이빨을 이용해 살점을 베는 방식으로 사냥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숨어서 고개를 까딱까딱 거리는 알로사우루스를 상상해보세요. :)

또한, 티라노사우루스는 두개골의 뒤쪽이 넓어지고 주둥이가 아래쪽으로 기울어져 시야 확보에 유리한 형태로 진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에서 어두운 부분은 양안시에 방해가 되는 영역을 표시한 겁니다.
A. Gorgosaurus, B : Daspletosaurus, C : Tyrannosaurus, D : Allosaurus

티렉스의 두개골을 정면에서 보면 이런 형태이며, 훌륭한 양안시를 지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1) 티라노사우리드와 마니랍토라 공룡은 충분한 BFoV로 추격에 의한 사냥이 가능했을 것이다.
2) 알로사우로이드와 같은 카르노사우리아, 그리고 케라토사우리아 등은 BFoV가 비교적 작아 매복에 의한 급습으로 사냥했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3) 양안시가 완벽하지 않아도 고개를 움직이는 방법으로 거리를 가늠해 급습하여 사냥은 가능할 것이다.

다음에 추가적인 부분은 더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goldenbug님, Map the Soul님, 이 정도면 답변이 되었습니까? 그리고 네이버 카페 링크된 글은 상당히 억지스런 느낌이 들어요. :)

Refs
1. Stevens, K. A. (2006) "Binocular Vision In Theropod Dinosaurs". Journal of Vertebrate Paleontology 26(2):321-330.
2. 이항재 외 (2007). 지질박물관탐험 티라노사우루스 (Tyrannosaurus rex), 한국지질자원연구원

by 꼬깔 | 2010/01/13 09:18 | 공룡 이야기 | 트랙백 | 덧글(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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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Niveus at 2010/01/13 09:33
...잘 읽다가 마지막 사진에서 뿜었습니다.
Commented by 꼬깔 at 2010/01/16 22:27
Niveus님// :)
Commented by Allenait at 2010/01/13 09:48
..마지막 사진이 뭔가 묘하군요
Commented by 꼬깔 at 2010/01/16 22:27
Allenait님// 그런가요? :)
Commented by 청투룡 at 2010/01/13 09:50
진지하게 읽다가 마지막 사진에 푸학....
Commented by 꼬깔 at 2010/01/16 22:27
청투룡님// ㅋㅋㅋ
Commented by 회색사과 at 2010/01/13 09:50
으하하
고개를 까딱거려서 거리를 잰다고 하니까
중학생때 지구의 공전 궤도를 이용해서?;
삼각함수로 별까지의 거리를 재던게 생각나네요 ㅎㅎ
닭은 머리를 까!딱! 하는 고 사이에
삼각함수를 계산하고 있는건가요...
닭대xx라고 놀릴게 아니네요... ㅎㅎㅎ
Commented by 꼬깔 at 2010/01/16 22:27
회색사과님// 하하하
Commented by The Nerd at 2010/01/13 10:08
마지막 사진은 1억 년짜리 개그군요. ㅋㅋㅋ
이미 양안시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가 되었다는 자체가 티라노사우리드가 훌륭한 사냥꾼이었다는 걸 보여 주는 결과라고 봅니다.
Commented by 꼬깔 at 2010/01/16 22:28
Lee님// ㅋㅋㅋ 그리고 티렉스의 양안시가 더욱 발달하게 된 것은 단순히 이를 위한 진화는 아닌 듯싶어요. 무는힘의 강화를 위해 후두골 쪽이 두툼해졌고, 결과적으로 양안시에 도움을 준 것이라 생각됩니다.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10/01/13 10:12
진지하게 읽어내려오다가 마지막 사진에서 격뿜...x 2
Commented by 꼬깔 at 2010/01/16 22:28
위장효과님// ㅋㅋ 모니터 닦으세요. :)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0/01/13 10:18
공룡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눈빛을 보고 있자니 후덜덜해지네요^^
Commented by 꼬깔 at 2010/01/16 22:28
네비아찌님// 하하하
Commented at 2010/01/13 10:2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꼬깔 at 2010/01/16 22:29
비공개님//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이렇게 at 2010/01/13 11:29
저도 오늘 생일입니다...이런 우연이..ㅋㅋ
Commented by 꼬깔 at 2010/01/13 11:38
이렇게님// 헉!! 정말요? :) 축하드립니다. 절대 까먹지 않겠는데요? :)
Commented by 炎帝 at 2010/01/13 14:12
생일 축하드립니다.^^

아참, 엔하위키라는 곳을 요즘 뒤지고 있는데, 요즘은 T렉스가 시체청소부가 아니라 사냥꾼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고 있다는군요.
http://nang01.cafe24.com/wiki/wiki.php/%ED%8B%B0%EB%9E%80%EB%85%B8%EC%82%AC%EC%9A%B0%EB%A3%A8%EC%8A%A4?action=show&redirect=?곕씪???ъ슦猷⑥뒪%20?됱뒪
Commented by 로크네스 at 2010/01/13 16:49
아니 여기서 위키질 하시는 분을 만나다니!
Commented by 트로오돈 at 2010/01/13 17:20
엔하위키라... 제가 엔젤하이로 회원은 아니지만 비로그인 상태에서 엔하위키 공룡 관련 항목에 손을 좀 보고있긴 합니다 ㅎ(엔하위키 비공식 유저이자 영어, 한국어 위키피디아 유저)
Commented by 꼬깔 at 2010/01/14 23:21
炎帝님// 사실상 호너 박사의 주장은 마이너한 것이 된 듯합니다.
Commented by 누렁별 at 2010/01/13 15:31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어?).
Commented by 꼬깔 at 2010/01/14 23:19
누렁별님// :)
Commented by Map the Soul at 2010/01/13 17:31
감사합니다 ^^ 확실히 네이버 카페 링크는 좀;;; 설득력이 그랬죠
Commented by 꼬깔 at 2010/01/14 23:20
Map the Soul님// :)
Commented by 구이 at 2010/01/13 19:23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사진에서 피식~~ 해버렸습니다~ㅋ
머리를 숙인다는게 아래로 내린다는 건가요 아님 옆으로 돌린다는 말인가요..??
아래로 숙이면 공룡씨들은 더 안보일 것 같은데요...ㅠㅠ?
Commented by 꼬깔 at 2010/01/14 23:20
구이님// 하하하 그랬습니까? :) 그리고 고개를 숙인다는 겁니다. 할아버지들 돋보기 쓰고 안경 너머로 사물을 쳐다보는 것처럼요.
Commented by 만슈타인 at 2010/01/14 07:13
흠 그렇군요 ㅇㅅㅇ;; 육식공룡의 같은 경우 양안시가 의외로 편리할지도... (...)
Commented by 꼬깔 at 2010/01/14 23:21
만슈타인님// 당연하겠죠? :)
Commented at 2010/01/15 17:3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꼬깔 at 2010/01/16 22:29
비공개님// 별 말씀을요. 답변이 무척 늦었지요. :)
Commented by 제법잡종 at 2010/01/15 21:49
집에서 키우는 도마뱀도 사냥전에 고개를 도리도리하다가 팍! 하고 잡아채던데...ㅎㅎ
Commented by 꼬깔 at 2010/01/16 22:29
제법잡종님// 그렇군요? :)
Commented by 온한승 at 2010/01/16 18:43
안구의 위치만으로 추격형,매복형을 나눌수 있는 가준이 되긴 힘들 것 같습니다. 저도 현생 육식동물 얘기를 하지면(ㅡㅡ;;;) 양안시는 추격형 포식자들뿐만 아닌 매복형 포식자에게도 유리한 구조라(포유류의 한해서) 대형 육식동물들에게 광범위하게 애용되고 있죠. 특히 매복형포식자가 많은 고양이과 동물들은 추격형 사냥꾼이 많은 개과 동물보다도 시야각이 좁은걸로 알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꼬깔 at 2010/01/16 20:46
온한승님// 당연합니다. 매복형과 추격형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통용된다는 얘기일 뿐이지요. 그리고 눈과 관련해서 단순히 양안시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도 없고요. 이 포스팅은 단순히 일반적인 얘길 했을 뿐입니다. 또한, 해당 논문은 이보다 더 많은 얘기를 했고요.
Commented by 케라토 at 2010/01/23 22:13
멋진 글이네요. 확실히 두개골에 돌기들(?)이 적은지라 방해 요소가 적군요.
할아버지처럼 고개를 숙인다니,........ 상상이 ㅋ
Commented by 꼬깔 at 2010/01/24 01:46
케라토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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